직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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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물(織物)

 

날실과 씨실을 직각으로 교차시켜서 평면으로 짠 천의 총칭. 직포(織布)라고도 한다. 직기(織機)를 이용하여 수동이나 자동조작으로 짜는데, 날실과 씨실의 교차방법에 따라 평직·능직·수직으로 나뉜다. 구성원료에 따라서도 여러 가지로 분류되며, 섬유원료를 혼방하거나 다른 섬유의 원사를 날실과 씨실에 교직하는 방법도 있다. 직물의 명칭은 원산지·창시자·생산회사·용도·재료 등에 따라 붙이며, 최근의 합성섬유직물은 생산회사의 독자적인 명칭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직물은 일정한 나비와 길이로 짜는데, 이것은 용도와 재단방법으로 결정되며 가공·취급·유통상 필(匹)의 단위를 쓴다.

 〔역사〕 

직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정착농경생활을 하게 된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하는데, 그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직물의 전단계로 보이는 편물조직에서 직물과의 연관성을 알수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문명이 발생한 지역은 어디든 직물의 출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이집트의 파이윰유적에서 출토된 BC 5000년 무렵의 아마포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서는 면포가, 이란의 시알크유적에서는 마포가 각각 출토되었다. 이보다 늦게 중국의 황허강〔黃河〕유역에서 견직물이, 잉카·마야·인디언의 고대문화 유적에서 마직물과 모직물이 출토되었다.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는 왕실의 보호업이 되었고, 가내수공업이 이루어졌으며, 이어 민간의 교역품이 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모직물은 이탈리아를 거쳐 네덜란드의 플랑드르지방으로 유입되었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발전하였다. 중국의 견직물은 실크로드를 통해 프랑스 리옹지방에 전해졌고, 이곳이 서구 견직물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면직물은 인도에서 지중해지방으로 전래되었고,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뒤 17세기에 유럽 여러 나라로 대량 반출되었다. 그 뒤 산업혁명기의 방직기 발전에 따라 기계력을 갖춘 영국에서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각종개량직기의 발명과 함께 화학섬유·합성섬유 등의 인조섬유가 개발되어 대량생산체제가 더욱 확실해졌다. 최근에는 촉감이나 드레이프성을 개선시키는 원사가공·표면가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직물〕

 한국에서는 약 5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칡이나 마를 써서 옷을 지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실증적 유물은 없다. 청동기시대에는 갈의(葛衣)나 마의(麻衣)를 입었는데, 당시는 염료가 개발되지 않아 흰천 그대로 옷을 지었고 백의민족이라 할 정도로 이를 즐겨 입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직물은 낙랑시대의 묘에서 출토된 견직물 조각이다. 삼국시대는 누에치기·길쌈이 성행하였고, 백제인은 일본에 능(綾)·금(錦) 등의 견직기술을 전파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 당(唐)나라 직물문화의 영향을 받아 보다 발전하였는데, 이때 견직물·삼베·모시 등의 생산을 관장하는 관서와 염색을 관장하는 관서가 따로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마직물이 성하였는데 삼베는 서민이, 모시는 상류계급이 쓰거나 중국 명(明)나라와의 교역품으로서 견(絹)과의 교환용으로 쓰였다. 조선시대 초에는 무명베 제직기술이 발달하여 무명베가 삼베·모시와 함께 주요 의료(衣料)가 되었으나 가내수공업에 의존하였으므로 품질이나 생산능률이 낮았다. 1890년대 후반에는 민간자본에 의한 소규모 공장이 각지에 생겼으며, 1879년의 대한직조소를 시작으로 1910년까지 40개 소의 직조소가 생기고 없어졌다. 국권피탈 이후 17년 조선방직주식회사, 23년 조선직물주식회사를 비롯하여 일본인 자본에 의한 직물공장이 차례로 설립되었고, 19년에는 처음으로 민족자본인 경성방직주식회사가 설립됨으로써 직물공업의 본격적인 공업화가 이루어 졌다. 50년대 초반부터는 각종 인조섬유직물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직물의 성능〕

 직물은 용도에 따라 필요한 성능을 갖추어야 한다. 물리적 성능은 주로 피복구성에, 화학적 성능은 피복정리나 염색가공에 필요하다. 직물이 외부의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기계적 성능으로 인 장강도·강연성(剛軟性)·탄성·파열 강도·충격강도·마찰강도 등이 있다. 어느 정도 쓰는 데 따라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는가 하는 것은 내구적인 성능이며, 이에는 내피로성·내마모성·방오성(防汚性)·내세성(耐洗性)·방충성·내열성 등이 있다. 기후 조정력이 좋고 신체를 보호하며 신체 활동에 적응하는 의료조건이 있는데, 이를 위생적 성능이라 하며 여기에는 흡수성·보온성·열투과성·통기성·방균성·방염성·내화학약품성 등이 있다. 또 장식적 성능에는 드레이프성·플리츠성·필링성·광택·색채 등이 있다. 감각적 성능은 감촉이나 드레이프성 등으로 느껴지는 성능으로, 직물 상태의 강연성·신축성·압축성(壓縮性) 등이 있다.고찬주▣

 綿織物

 면사를 원료로 한 직물의 총칭. 무명·면포라고도 한다. 짠 그대로 정련(精練)·표백 등의 처리를 하지 않은, 황갈색이고 잘게 분쇄된 면실(棉實) 껍질이 붙어 있는 조포(粗布)·세포(細布) 등과 가공을 한 표백면포·색면포가 있다. 표백하려면 흔히 표백분이 쓰이며, 목화에 함유되어 있는 천연색소를 없애고 순백색으로 만든다. 색무명은 선염(先染)·후염(後染)·날염(捺染)으로 나뉘는데, 선염직물은 날실·씨실의 일부 또는 전부를 염색한 무명실로 짠 것이다. 가로줄무늬·세로줄무늬 직물은 대체로 선염이고, 잔 무늬의 직물도 선염직물이다. 후염직물이란 천 상태에서 염욕(染浴)한 색으로 염색한 것이고, 날염직물은 무늬를 염색한 것인데, 겉옷용으로 많이 쓰인다. 한국에서 재배된 면종은 재래면과 육지면인데, 육지면은 1904년 목포 고하도(高下島)에서 가꾸기 시작하여 장려되었다. 그 뒤 조면(繰綿)이 가내수공업의 범위에서 벗어나 공장의 규모로 발전되었으며 1917년 방직회사가 설립되어 무명의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한국의 무명제직은 1950년대까지 가내수공업적인 베틀에 의한 것이 병행되었으나 점차 드물게 되었고,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로 나주의 샛골무명나이를 지정, 섬세직무명의 제직기술을 전승시키고 있다. → 직물▣

 綿織物工業

 면화를 원료로 하여 뽑아낸 면사(綿絲)로 직물을 만드는 제조업. 싼 값에 비해 내구성·흡습성·보온성이 뛰어나 속옷에서 고급 의료(衣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용도로 쓰인다. 면화는 현재에도 세계 섬유생산의 50.4%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섬유이며, 합성섬유의 비중이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면제품의 수요는 견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세계 각국의 생산량뿐만 아니라 섬유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면직물공업〕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도·중국·한국·일본·터키·브라질 등의 면화생산국이 면직물의 주요 생산국이었으며, 면화를 생산하지 않는 서유럽 여러 나라의 면직물생산은 극히 미미한 것이었다. 중세 이슬람교도에 의해 지중해 연안의 유럽(에스파냐·이탈리아)으로 전래된 면직물은 <상업의 부활> 이후, 소량이지만 북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생산되었으며, 중세 말(14세기 전반)이 되자 알프스를 넘어 남부독일의 마직물(麻織物) 지대에서도 생산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전 유럽의 면제품은 날실〔經絲〕로서 장력(張力)에 견디는 직사(織絲)를 뽑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두 대체품으로 삼실〔麻絲〕이 사용되었다. 남부 독일의 바르헨트직이나 18세기에 네덜란드·영국의 두 동인도회사의 인도산 캘리코 수입에 의해 야기된 서유럽의 <패션혁명>이 한창 진행중일 때 영국 랭커셔지방의 농촌 가내공업에 의해 제조된 퍼스티언직물은 모두 날실에 삼실을, 씨실에 면사를 사용한 교직(交織)직물이었다. 영국의 면직물공업이 강인한 날실의 대량생산에 성공하고, 인도산 캘리코에 대항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확립한 것은 R. 아크라이트가 발명한 수력방적기(水力紡績機)에 의해서였다. 또 가늘고 질긴 날실·씨실을 생산하여 인도의 고급품 모슬린에 대항할 수 있는 제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된 것은 S. 크럼프턴이 발명한 뮬방적기(1779, 단일 기계로 소자본 경영자도 설비가 가능하였다)에 의해서였다. 이 2가지의 발명이 인도 면공업과 영국 면공업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비저(飛저)나 역직기(力織機)의 발명은 이 판도의 역전을 가속화시켰다. 기계제공업(機械制工業)으로서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 면공업은 19세기에 접어들자 값싼 기계제 면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놓음으로써 19세기 전반에는 생산고의 50~60%, 후반에는 70~80%가 수출되었다. 따라서 인도의 전통적인 면공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 랭커셔에서 생산되는 면제품의 최대 소비시장으로 전화(轉化)하였다. 랭커셔의 면직물 수출품은 1882~84년에는 세계시장의 82%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대량의 원료면(原料綿)은 모두 해외에서 수입되었는데, 18세기 말까지는 흑인노예의 노동력에 의한 서인도제도의 플랜테이션과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이 최대의 공급지였으나 남북전쟁(1861~65)에 따른 <면화기근(棉花飢饉)> 이후에는 식민지 인도와 영국에 종속된 이집트로부터도 공급되었다. 미국 남부의 흑인노예와 인도·이집트의 예농소작제(隸農小作制), 영국의 저임금 노동이 근대공업의 발전을 뒷받침해 준 것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영국의 면공업은 한 국가적인 범주를 벗어난 <세계자본주의>로서 성립·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면공업의 보급〕영국에서 개발된 근대적인 면공업 기술은, 유럽 대륙에는 19세기 초의 나폴레옹전쟁 뒤에, 미국에는 영미전쟁(1812)이 끝난 뒤에 전파되어, 관세 및 기타 보호정책으로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식민지 인도에서도 19세기 후반에는 면방적공장이 민족자본으로 설립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중국시장을 둘러싼 열강들의 면공업 자본간에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었다. 제 1 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에 영국 면직물의 연간 수출은 30억yd²라는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전쟁으로 인해 공급을 중단함에 따라 많은 국가들의 자급률이 높아졌으며, 면직물의 국제무역은 대폭적으로 축소되었다. 특히 중국·동남아시아 시장으로부터의 후퇴와 함께, 최대 시장인 인도의 보이콧운동 및 보호관세 인상은 영국에게 큰 타격을 주어 제 2 차 세계대전 직전에 그 생명선인 인도시장을 완전히 잃음으로써 랭커셔의 면공장은 폐허가 되었다.

 〔한국의 면직물공업〕근대적 의미의 면방적공장은 1917년 일본 미쓰이〔三井〕그룹 자본에 의한 조선방적주식회사이고, 한국의 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면방적공장은 19년 설립된 경성방적주식회사(京城紡績株式會社)이다. 그 후 33년 동양방적주식회사, 35년 종연방적주식회사 광주공장, 36년 종연방적주식회사 경성공장 등이 세워졌지만 대부분 일본인 자본에 의해 운영되었다. 따라서 광복 직후에는 경영 및 기술의 부재로 인하여 그 기능이 정지되었고, 일본인 자본의 요구에 따라 매우 기형적인 기반으로 육성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48년 정부수립 이후에는 면방적공업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정부의 지원으로 정상 가동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49년에는 방직기 30만 4500추(錘), 직기(織機) 8970대로 설비가 증가하였으며 면사는 1만 2800t, 직물은 5만 8700㎢로 증가하였다. 50년에 면방직업체는 49년에 비해 40% 이상 생산을 증가할 계획이었으나, 6·25의 발발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57년부터는 8·15 후 계속되어 온 인플레이션이 수습되어 물가도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으며, 새로운 기반 위에서 국내 면방직업계도 발전과 경영합리화를 위한 자율적 정비와 시장대책 수립에 노력했다. 57년부터 해외시장을 개척해 61년에는 12만 7500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70년대에는 공장의 대형화와 방직시설의 현대화를 통하여 대량생산체제와 수출산업으로서의 기반확충으로 세계 굴지의 면직물공업국으로 도약했다.

  

*직물의분류

 

구성원료에 따라 면직물·마직물·견직물·모직물·혼방직물·합성섬유직물 등으로 분류된다. 또 의장과 조직에 따라 무지직물·줄무늬직물·나염직물·문직물·자수직물·타월직물·벨루어(velour)직물·익직물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⑴ 면직물:면사를 원료로 하여 짠 것으로 족답경사수직기를 이용해 수직으로 짠 것은 무명이다. 보온·내구·흡습성이 띄어나고 염색이 잘되는 특징이 있어 의류·속옷·가구·부엌용품 등에 주로 쓰이며, 구명복·우주복 등에도 쓰인다.

⑵ 마직물:아마·저마·대마·황마 등의 초피(草皮)섬유로 짠 직물로서 마포(麻布)라고도 한다. 평직으로 짜여진 것이 많으며 염색이 어렵다. 구김이 잘 가고 내구성·내수성이 커서 의복용보다는 자재용으로 쓰인다. 그러나 대마직물인 베·삼베나 저마직물인 모시는 통기성이 좋아 예로부터 여름옷감으로 많이 쓰였다.

 

⑶ 견직물: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을 원료로 제작한 천연섬유직물로 보통 실크라고 한다.예로부터 한국에는 대표적인 것으로 견·백(帛)·소(素)·호(縞)·시·주(紬)·초·사(紗)·나(羅)·능(綾)·금·단(緞)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옷감으로 많이 쓰였던 주(紬)는 평직물이고, 초는 생사견, 사는 사직견, 나는 예직견이다. 금은 평직과 능직의 문직이다. 근래에는 수직으로서 절직(節織)이 주와 같이 제직되어 한복의 치마·저고리·두루마기감으로 많이 쓰인다. 견직물의 특성은 온화한 광택을 낸다는 점이며 이 때문에 예로부터 고급직물로 쓰였다. 또한 섬유가 매우 가늘고 길며 질기므로 얇은 것, 치밀한 것까지 쉽게 짤 수 있다. 또 보온성이 좋고 염색이 잘 되므로 여러 가지 색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일광에 약하고 염색이나 세탁으로 변색되기 쉽다.

 

⑷ 모직물:동물의 털실로 짠 직물로 섬유의 종류에 따라 소모직물(梳毛織物)과 방모직물(紡毛織物)로 나뉜다. 이들은 섬유의 종류에 따라 제조공정이 다르다. 직포공정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나 마무리공정에서 방모직물에 축융(縮絨)·기모(起毛)가 행해진다. 모직물의 특성은 촉감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신축성·탄력성·흡습성·염색성 등이 좋은 반면, 세탁으로 줄어들 우려가 있으며 충해를 입기 쉬운 결점이 있다. 최근에는 방축·방충가공에 의해 결점이 보완되고 있다. 의료용·이불용으로 쓰인다.

 

⑸ 혼방직물:2종류 이상의 섬유를 섞은 혼방사를 날실이나 씨실의 한쪽 또는 양쪽 모두에 사용하여 제직한 것으로, 종류가 다른 섬유의 성능을 높이고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제직된다. 폴리에스테르·면 혼방직물은 다리미질이 필요 없는 와이셔츠감 등에 쓰이고, 폴리에스테르·양모 혼방직물은 가볍고 구김이 잘 가지 않으며 질겨서 신사용과 여성용 겉옷·코트·스웨터 등에 쓰인다. 이 밖에 양모·나일론, 아크릴·양모, 비닐론·폴리노직, 면·비닐론 등의 혼방직물이 쓰이고 있다.

 

⑹ 합성섬유직물:석탄·석유·물 등을 원료로 하는 화학섬유로 제직한 것으로, 촉감·염색성·세탁성이 좋다. 또 흡습성이 매우 낮고 안정강도가 매우 크며 물에 넣어도 신축이 적으나 열에 약한 단점이 있다. 현재 나일론·폴리에스테르·아크릴섬유의 직물이 주류를 이룬다. 의료용에 가장 많이 쓰이고, 그 밖에 용도로 여과포(濾過布) 등에 쓰인다.

 

*직물의 가공

 

섬유제품을 화학적·물리적으로 처리하여 보임새·태·쓰임새 등을 바람직한 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섬유와 약제의 성질이나 그들 사이의 보완적 성질을 이용하여 가공한다. 보임새 가공에는 섬유제품의 광택을 강하게 하는 머서가공과 캘린더가공이 있고, 광택을 약하게 할 때는 소광제를 쓴다. 또 직물의 겉면처리에 있어서도 매끄럽게 하는 타포가공(打布加工), 잔주름을 잡아주는 크레이프가공, 울퉁불퉁하게 하는 엠보싱가공 등이 있다. 태 가공은 천을 부드럽거나 빳빳하게 혹은 무겁고 부피가 있게 하거나 구겨지지 않도록 하는 가공으로, 증량가공·방추가공 등이 있는데, 합성수지가 중요한 가공제로 쓰인다. 쓰임새 가공은 섬유제품의 용도에 따른 조건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가공으로, 방축가공·워시앤드웨어가공·방충가공·방수가공·방부가공·발수가공 등이 있다.

 *담요

 

blanket 방모직물(紡毛織物)의 일종. 모포(毛布)라고도 한다. 평직·능직·씨줄2중직·2중직 등의 직물에 축융(縮絨) 가공한 후, 양면에서 보풀을 만들어 가늘고 부드러운 털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두껍고 보온성이 뛰어나며 가볍고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직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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